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제목 : 허송 세월
지은이 : 김훈
출판사 : 나남
독서일 : 2026.9.26.
페이지 : 336
ISBN : 9788930041683
소장 여부 : 대출(종이책)
※ 2026년 19번째 독서
독서배경
2026년 추석 연휴는 4일로 평소보다 짧은 편이었다. 그 전에 많은 감정적인 일들을 일단락하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 몇권을 빌렸다. 책은 조금 내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은 주제로 골랐다. 하루 전에 읽었던 《빅터 프랭클》도 쉽게 완독 해서 다시 《허송세월》 을 읽기 시작했다. 평소 김훈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고, 감정의 과잉과 군더더기 없이 쓴 글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표지
표지는 레자크 종이처럼 약간의 무늬인지 잡티가 섞여 있는 베이지색이다. 제목인 ‘허송세월’과 작가명, ‘산문’ 이 세로로 적혀 있다. 중간 아래에는 스케치를 수묵화로 그린 듯한 그림이 있다. 그림 위에 강하게 붙어 있는 도서관 도서 바코드 스티커 때문에 전체 그림은 알 수 없지만, 대충 먼산과 멀리 날아가는 새가 있고, 나무 2그루가 있는 정자 같은 쉼터에 모자 쓴 사람이 앉아 있는 느낌이다. 모자 쓴 사람이 아마 작가 자신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책과 달리 표지 핵심 문장이 없다. 군더더기 같은 말을 싫어하는 작가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 보았다.
저자소개

책의 저자 소개에는 ‘1948년 서울 출생.’ , ‘장편소설 《하얼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산문집 《연필로 쓰기》 등이 있다.’ 라고 4줄로 짧게 설명되어 있다. 최근에 이 정도로 짧은 작가 소개는 본 적이 없었다. 이것도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작가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 본다.
다들 잘 알겠지만 김훈 작가님은 대표작 《칼의 노래》, 《남한 산성》, 《현의 노래》, 《흑산》 등 장편소설과 여러 산문집을 썼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중언부언하지 않는, 꾸밈 없이 건조한 듯한, 정과 반을 통해, 찰진 비유로, 주제와 핵심을 말하는 글을 좋아한다.
‘우리 새’ 라는 말에 나는 웃었다. 새는 저 자산일 뿐이고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닐 터인데, 자기 집 마당의 나무에 깃들인 새를 사람은 기어이 ‘우리 새’라고 부른다. <새1> P.65
차례
앞에 늙기의 즐거움
1부
새를 기다리며
일산 호수공원의 설날
말년
허송세월
재의 가벼움
보내기와 가기
새 1 - 새가 왔다
새 2 - 새가 갔다
다녀온 이야기
꽃과 과일
눈에 힘 빼라
시간과 강물
태풍전망대에서
적대하는 언어들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2부
글과 밥
여름 편지
걷기예찬
조사 ‘에’를 읽는다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노래는 산하에 스미는구나
난세의 책 읽기
먹기의 괴로움
혼밥, 혼술
주먹도끼
박물관의 똥바가지
구멍
수제비와 비빔밥
몸들의 평등
키스를 논함
새 날개 치는 소리를 들으며
고속도로에 내리는 빛 - 겨울의 따스함
3부
푸르른 날들
청춘예찬
안중근의 침묵
아이들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아라 1
아이들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아라 2
박경리, 신경림, 백낙청 그리고 강운구 - 강운구 사진전 〈사람의 그때〉를 보면서
주교님의 웃음소리
아날로그는 영원하다
여덟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개별적 고통을 생각하며
호수공원의 봄 1
호수공원의 봄 2
인생의 냄새
뒤에 새와 철모
최종감상
책은 쉬었고, 각 산문은 대부분 공감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3시간 정도에 다 읽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이웃 블로그, 스토리를 정주행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반적으로 저자가 사는 지역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에 대한 감상과 노년에 대한 마음 정리를 바탕으로 산문이 쓰여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크게 감흥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공감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나에게는 대체로 잘 맞고 곰곰히 다시 꺼내 읽어볼 만한 글맛을 가진 산문이었다.
저자의 나이쯤 되면 누군가의 가르침 또는 배움에 의해 자기를 고치기는 어렵다. 그 보다 젊은 사람도 40대 이후 장년으로 넘어가면 잘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글에서도 저자가 바뀌는 것은 크게 없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크게 치우침 없이 건조하게 자기를 생각하고 사물을 생각하고 사건을 말한다. 그런 담담하고 건조한 말들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쓴 《남한산성》 에서의 대화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된 일이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이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 말 앞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청군 오랑캐에 의해 소중한 사람 또는 무언가가 참혹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 이었다.이 말을 전달하는 이도 이미 이 참혹한 내용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갖고 난 후 겨우 입을 여는 상황이었고, 듣는 이도 같은 깊은 슬픔을 가질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슬퍼해도 바뀔 것은 없다는 것이 함축된 표현으로 느꼈다.
이 처럼 이 책에서도 짧은 문장이지만 저자의 마음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A는 A다’ 라고 말하면 맞는 말이지만 하나 마나 한 말이고 아무 말도 않은 것과 같지만, 말의 껍데기는 남는다.
<허송세월> P.45
이 문장도 ‘삶은 살아가는 거다’라고 스스로 대입해서 생각해 보았다. 하나 마나 한 말이다.’ 삶이 살아가는 거지 죽어가는 거요?’ 라고 누군가 반문할 지 모른다(죽어가는 것도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말의 껍데기인 ‘삶은 살아가는 거다.’는 분명 남어 있다. 껍데기를 꾸미기 위해서 ‘그럼 어떻게 살아갈건지?’ 라는 덧붙이는 물음도 생각난다. 이런 생각도 다 의미없다고 산문의 제목을 <허송세월> 이라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미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다 제 삶의 주인공이지 않은가?’ 라는 나의 생각도 반발심처럼 든다.
뒷 표지의 대표 문장의 마지막 문구인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처럼 저자에게 ‘허송세월’은 단순히 쓸데 없이 보내 버린 시간이 아니고 재충전과 사유의 시간인 것 같다. 그냥 늙어감과 노년의 시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산다는 다짐처럼 느껴진다.
책 속에 기억에 남는 문구
<말년> P.39 주어와 술어를 논리적으로 말쑥하게 연결해 놓았다고 해서 문장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주어와 술어 사이의 거리는 불화로 긴장되어 있다. 이 아득한 거리가 보이면 늙은 것이다.
<허송세월> P.45 'A는 A다' 라고 말하면 맞는 말이지만 하나 마나 한 말이고 아무 말도 않은 것과 같지만, 말의 껍데기는 남는다.
<재의 가벼움> P.52 책을 버리기는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다. 헌 신발은 연민할 수 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뼛가루에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새1> P.65 ‘우리새’라는 말에 나는 웃었다. 새는 저 자신일 뿐이고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닐 터인데, 자기 집 마당의 나무에 깃들인 새를 사람은 기어이 ‘우리새’라고 부른다.
<꽃과 과일> P.83 인간의 언어가 사물을 온전히 쥐지 못하고 엉거주춤할 때 꽃은 저 자신의 운명을 활짝 드러내면서 망설임 없이 핀다.
<여덟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P.283 이 불완전성은 세계의 본래 스스로 그러한 운명이다.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의 혹은 이념의 깃발을 들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자들은 어리석다. 이 세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 불완전성을 해결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세계와 인간을 대하는 마음에서 겸손과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을 갖출 수 있다. 겸손과 조심스러움을 상실한 태도가 이 불완전한 세계 위에 지옥을 완성하다. 이 지옥의 이름은 파시즘이다.

(뒷표지)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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