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트 프레라 만년필 사용기
● 구매 동기
2023년 12월 31일 밤 10시쯤 이었다.
모두 다 잠든 시간에 이렇게 또 일년이 가는 구나라는 상념이 들었다.
2023년에 뭐가 남았나 생각하며 휴대폰 속 포털 쇼핑페이지를 열어 보니,
중저가 만년필이 광고 되고 있었다.
LAMY 2000 - Product Information and Writing Systems
예전에 일본 IT생활 청산 이후 귀국 때,
일본에서 라미LAMY 만년필의 플래그십 모델인 ‘라미 2000‘ 큰 돈 주고 스스로의 선물로 샀다.
그런데, 귀국 후 거의 못 쓰다가 분실했다.
그 때부터 비싼 필기구는 관심밖으로 보냈다.
애지중지하는 고가의 만년필 1개보다 막
쓸 수 있는 저가의 만년필 10개가 났다고 생각했다.
3만원 정도의 만년필이라면 잊어버리지 않으면 평생 갈 수도 있고,
잊어버려도 아쉽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 보다 3000원 정도 비싸다고 생각되었지만,
무료 배송에 무료 각인 서비스가 있어 주문하였다.
● 배송
연말 말일에 주문한 만년필은 10일 정도가 걸려서 도착했다.
당장 써야 할 만큼 급한 것도 아니고, 각인까지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중간에 판매자에게 각인 문자가 너무 기니 10자 이내로 줄여 달라는 연락이 왔다.
어차피 나를 위한 기념 소품이니 선물 받는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기다렸다.
● 제품
제품 구성은 단순하다. 만년필과 잉크 컨버터, 잉크카트리지 5개, 만년필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년필은 가는 2023년을 기념하고 스스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고 싶어 붉은색 계열로 했다.
2024년은 청룡의 해이니 파란색도 고민했는데, 붉은색의 필기구가 없는 것 같아 선택했다.
제품은 완전한 빨간 색은 아니고 약간 연자주색 계열인 것 같다.
잉크카트리지는 안 쓰니 따로 치우고, 잉크 컨버터를 만년필과 결합하고 잉크를 주입했다.
잉크도 기념하는 의미로 오렌지색으로 했다. 사실 만년필은 이 제품 말고도 몇 개 갖고 있다.
● 시필
만년필을 좋아하는 편이라 많이는 아니지만 몇 종류를 써 봤다.
내 취향에는 일본 메이커가 잘 맞는 것 같았다.
연결되며 빠르게 필기할 수 있는 영어 알파벳보다는
끊어짐이 많은 한글, 일본어, 한자 같은 동양 언어에 특화된 게 일본 메이커의 만년필인 것 같았다.
요즘은 저가 중국제 만년필도 펜촉 품질은 많이 올라와서 쓰기 나쁘지 않다.
하지만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저가 중국제 만년필은 잉크가 은근히 누수가 잘되는지
필기하다 보면, 손가락이 잉크로 지저분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파이로트 만년필은 이미 2개를 갖고 있다.
둘다 제품명은 기억이 안 나지만, 3만 원 정도 하는 제품이다.
기존 2개의 파이로트 만년필에 비하면 프레라는 좀 더 짧다.
몸체가 플라스틱이라서 가벼워 장시간 필기에 무리가 없다.
파이로트 프레라 만년필은 F촉이라서 그런지 부드럽게 크게 써진다.
EF촉으로 할 수 있다면 그쪽이 더 나에게 맞을 것 같기는 하다.
● 후기
필기보다는 컴퓨터 워드나 스마트폰의 문자를 더 많이 치는 요즘에,
만년필은 대부분 내부 잉크를 다 쓰지 못한다.
주말에 마음 먹고, 만년필 내부를 맑은 물로 청소하고, 시필 몇 번 하고 나서 두면,
다음 주말에 독서 필사나 메모를 하려고 꺼내보면 잉크가 메말라 있다.
편하기는 볼펜이나 젤펜이 편하다.
하지만 만년필은 만년필 특유의 필기감이 있다.
필기구의 볼이 종이 위에서 혼자 미끄럽게 굴러가지 않는,
필기구의 촉이 쓰는 이의 힘에 의해 사각사각 종이 위를 긁는 느낌이 있다.
마치 연필의 흑연이 종이 위에 달라붙는 것처럼,
만년필의 잉크가 종이 위 홈을 채워 나가는 느낌이다.
볼펜은 한번 다 쓰면 심을 버려야 하고,
리필심을 10번 쓰기 전에 (대부분의 플라스틱) 볼펜 몸체는 고장 나거나 금이 간다.
이 부분은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면서수십개의 볼펜심을 다 쓰고,
열몇 개의 볼펜 몸체를 바꾼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년필은 (그 정도로 혹사시키지 않기 때문에) 잉크를 채워주고,
다 쓰거나 마르면, 다시 채워주고, 막히면, 물로 청소해주고 하면 평생을 쓸 수 있다.
만년필을 떨어트려 펜촉이 휘거나 고장 나지 않으면 그렇다.
볼펜도 떨어트려서 고장 나는 것은 똑같다.
대부분의 필기구는 분실로 인연이 끝난다.
이번에 각인을 새긴 나만의 만년필은 오래 인연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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