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제목:걷기의 즐거움
원제:The Joy of Walking
엮은이:수지 크립스
옮긴이:윤교찬, 조애리
출판사:인플루엔셜
독서일:2024.717.~2024.7.19.
페이지:
ISBN13:9791168341395
소장여부:대출(전자책)
※2024년 31번째 독서
독서배경
오랜만에 책을 들었다. 정확히는 전자책을 기기에서 로딩하였다. 올해 4월 이후 뭔가 식어버린 독서의 열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첫째 원인은 체력이었던 것 같다. 큰 병치례는 아니지만 갑자기 안 아픈 곳이 아프게 되고, 동네 의원이지만 몇 번 다니면서 진료받고 약 받아 오고 하니, 지적 활동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 같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란 말이 새삼 와 닿은 시기였다.
이래저래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몇 달 놀다보니 다시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약간 생겼다. 사실 5월의 일본여행에 대한 블로그를 마무리 짓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기는 하였다. 그래도 4월 중순 부터 7월 중순까지 일 년의 1/4을 독서를 안 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다시 책을 읽고 싶기는 하지만 내용이 어렵거나 쉽게 읽어지지 않는 책을 붙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냥 천천히 조금씩 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이 책을 선택하였다. (그냥 전자책 도서관에서 추천하는 도서 중에 눈에 띄어서 이 책을 선택한 건지도 모르겠다.)
표지
표지는 유화인지 수채화 담채인지 땅과 들판과 강물과 건너편 땅과 먼산을 겹겹이 그려져 있고 표지 중간에 남자가 걷는 듯한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표지에서 차분한 느낌을 받았다. 표지 밑의 띄지 부분에는 '제인 오스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찰스 디킨스', 'E.M. 포스터', '샬럿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 등 서른네 명의 작가가 길 위에서 쓴 사유와 감성의 문장들 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뭔가, 각 꼭지별로 3~5장 씩 가볍게 읽으며 산책에서 오는 치유를 얻을 수 있을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엮은이
표지의 엮은이 이름은 수지 크립스인데, 전자책 속의 소개에는 “편집자이자 작가. 옥스퍼드 맨스필드 칼리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옥스퍼드 서머빌 칼리지에서 문예창작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BBC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책 속의 각 내용의 저자는 존 다이어, 장 자크 루소, 제인 오스틴, 챨스 디킨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등 총 34명이다.
차례
엮은이 서문
1장 걷기는 마음이 시키는 일
- 헨리 데이비드 소로 「걷기」
- 장 자크 루소 『고백록』
- 윌리엄 쿠퍼 「정오의 겨울 산책」
- 존 버로스 「길가의 환희」
- 존 클레어 「여름 분위기」 외
- 윌리엄 워즈워스 「구름처럼 외롭게 나는 헤맸네」 외
- 레슬리 스티븐 「걷기 예찬」
- 윌리엄 해즐릿 「홀로 가는 여행」
- 버지니아 울프 「밤 산책」
2장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 E. M. 포스터 『전망 좋은 방』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도보 여행」
- 월트 휘트먼 「열린 길의 노래」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벵골의 모습』
- 도로시 워즈워스 『스코틀랜드 여행 회상기』
- 윌키 콜린스 『철길 너머 산책』
- 마크 트웨인 『떠돌이, 해외로 나가다』
- 로사 N. 캐리 『다른 소녀들과 다르게』
- 존 다이어 「시골 산책」
- W. B. 예이츠 「방황하는 잉거스의 노래」
3장 걷는 존재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오로라 리』
- 토머스 하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 프랜시스 버니 『방랑객 또는 여성의 어려움』
- 에밀리 브론테 『워더링 하이츠』
- 앤 래드클리프 『우돌포성의 비밀』
- 해리엇 마티노 『디어브룩』
-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 프레더릭 더글러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 이야기』
4장 도시를 걷는 산책자
- 샬럿 브론테 『빌레트』
- 로버트 사우디 『영국에서 온 편지』
- 찰스 디킨스 「밤 산책」
- 샬럿 레녹스 『여성 키호테』
- 엘리자베스 개스켈 『남과 북』
- 앨프리드 테니슨 「인 메모리엄」
이 책에 실린 글
최종 감상
감상
책의 내용은 여러 근현대 시대의 작가, 예술가의 걷기 또는 산책에 대해 모은 글이다. 걷기, 산책 자체에 집중하는 글도 있고, 특정 문학 작품 속에서 주인공 (특히 여성 주인공)이 걷는 상황과 거기에 따라오는 사건을 잘라 짧게 발췌한 글도 있다. 모두 걷기를 통해서 감성이나 새롭게 시작하려는 상황에 초점을 둔 것 같다.
책 속 글의 주인공의 시점은 대부분은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중반까지 영국, 미국 또는 유럽에서 살았던 인물(가끔 비서구권 저자도 나음)들로,
1장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한 두 세대가 지나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고 삶에서 여유를 찾는) 중산 계층의 세속적 여가 활동 또는 여행 대신, 온전히 자연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활동으로 산책·걷기를 찬양하고 있다.
2장에서는 걷기를 통해서, 현재에 익숙한 장소가 아닌 낯선 장소에서의 기대와 긴장을 적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3장에서는 19세기 초중반의 영국 여성, 미국 노예들 수동적인 삶과 걷기라는 활동이 주는 주체적인 생각의 시작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4장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팽창되고 급변하는 19세기 중반 영국 대도시(런던)를 걷는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자연 속에서 세속적인 환경과 섞이지 않는, 온전히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으로써 걷기를 말하고 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목 위까지 차오른 배금주의와 경쟁에 대한 반발로 자연에서 안식을 찾고 싶어 한 저자들의 희망과 당시 (남성에 비해) 수동적이었던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야외활동으로 새로운 생각의 시작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읽다 보니 드는 생각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영국의 문학가(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ing,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프랜시스 버니Frances Burney,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 앤 래드 클리프Ann Radcliffe, 해리엇 마티노Harriet Martineau, 조지 엘리엇George Eliot)들의 글이 많이 나온다. 왠지 영국의 근현대 소설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 나오는 시골 풍경과 야외에서 여행·산책을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타깃이2030 여성들에게 맞춰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다 읽고 나니, 읽기에는 큰 부담이 없었는데, 크게 마음에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책 속의 발췌(또는 생각나는 줄거리)
1장 걷기는 마음이 시키는 일
장 자크 루소 《고백록》
걷다 보면, 멋진 시골 풍경과 연이어 눈에 들어오는 상쾌한 모습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게 되고, 입맛도 살고 건강도 챙길 수 있게 된다. 숙소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고, 내가 묶여 있는 것들을 떠올리는 모든 것에서 떨어져 있다는 점이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며 대담한 사고도 가능케 해 준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나를 거대한 존재 속으로 밀어 넣고는 내 상상에 맞게 존재의 모든 것을 고르고 묶고 내 마음대로 활용하게 된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자연을 처리하면서 내 마음은 만나는 대상에 따라 움직인다. (11%)
레슬리 스티븐 《걷기 예찬》
진정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 자체가 즐거워서 걷는다. 그는 걷기가 요구하는 육체적 강인함에 대한 자기 만족을 넘어 잘난 체하지 않는다. 다리의 근육 운동은 다만 걷기가 자극하는 ‘두뇌 운동’이나 걸으며 떠오르는 조용한 명상이나 상상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며, 꾸준하게 땅을 밟고 나아가면서 지적인 균형감을 유지한다. 사이클 선수나 골프 선수도 공을 때리거나 페달을 밟는 중간중간에 스스로와 이런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진정으로 걷기를 즐기는 이유는 걷는 동안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한결같이 조용하게 사색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23%)
윌리엄 헤즐릿 《홀로 가는 여행》
나는 걸으면서 남과 말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시골에서 지낼 때 나는 그저 아무 말 않고 무위도식하며 지내고 싶을 뿐이다. 줄지어 서 있는 울타리나 검은 소 떼를 보고 뭐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며 단지 도심지와 그 안의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런 목적으로 휴양지로 떠나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은 도심지 자체를 짊어진 채 거기로 이동할 뿐이다. 나는 자유로운 공간이 좋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싫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혼자 있는 것 자체를 즐기려고 혼자 떠나는 것이다.
(중략)
행의 핵심은 자유로움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 무엇보다도 우리는 모든 장애물과 모든 거추장스러움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난다. 남들을 다 잊고 스스로마저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를 두고 명상에 빠져 지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25%)
2장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월트 휘트먼 〈열린 길의 노래〉
1
나는 마음 가볍게 열린 길로 가리라,
세계는 내 앞에 펼쳐져 있고, 나는 건강하고 자유로우며,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든 내 앞의 황톳길로 갈 수 있다.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지금부터는 행운을 찾지 않으리라,
지금부터는 더 이상 투덜대지도, 더 이상 미루지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불평과 도서관과 논쟁적인 비평이여 안녕,
만족한 상태로 씩씩하게 열린 길로 여행을 시작한다.
지상,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 더 이상 별들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별들이 제자리에 아주 잘 있음을 알고,
별들끼리만 있어도 완벽하다는 것을 안다.(37%)
3장 걷는 존재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은 아픈 언니를 만나러 한참을 걸어간다. 주변 사람들은 점잖은 여성인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날씨도 궂은데 혼자” 그 먼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여기서 걷기는 상류사회와 숨 막히는 예법에 대한 강력한 반항이다. (55%)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빛나는 눈과 불그스레한 뺨을 사랑에 눈뜬 젊은이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나이가 많든 적든 아마도 모든 사람(선거법 개정 이전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시를 통해 충분히 신성시된 클로이에 대한 스트레폰의 망상에 가까운 사랑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은 마음에서 배어나는 모든 애처로운 사랑을 우러러보게 마련하다. 또한 절대로 식지 않는 끝없는 우정과 사랑을 꿈꾸는 총각과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 부모가 즐겨 보던 한 편의 드라마로 복장만 바뀌었을 뿐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허리가 짧은 연미복을 입어도 그럴듯한 모습의 총각이라면 그의 미덕과 특별한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전한 진실성을 알아보는 것이 완벽한 여성으로서 아가씨가 할 당연한 일이자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결혼에 대한 젊은 여자의 생각이 고상하게 인생의 목적에 대해 열중한다거나 인생 그 자체의 불꽃으로 고양되는 삶 등으로 채색되어 있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팁턴 인근에도 그런 사람이 아예 없었다. 하물며 혼숫감이나 접시 문양은커녕 꽃다운 처녀가 느낄 명예나 달콤한 즐거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면 말이다.
도러시아는 커소번 씨가 자기와 결혼하기를 바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원한다는 생각에 감동받은 그녀는 일종의 존경심 어린 고마움까지 느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어쩌면 날개 달린 메신저가 그녀의 옆에 서서 그의 손을 잡아 이끈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한동안 그녀는 어떻게 해야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들지에 대해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마치 짙은 여름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불확실한 상태에서 지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지? 이제 막 봉우리가 여문 여인에 불과했지만, 이리저리 씹어대고 돌아다니는 변덕스러운 생쥐 같은 소녀적 취향에 만족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엄청난 정신적 욕구가 그녀의 마음에 있었다.
(중략)
그녀에게 매력적인 결혼이란 그녀를 소녀다운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그녀를 원대한 여정으로 이끌 수 있는 인도자에게 스스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배우게 되겠지.” 그녀는 숲속을 지나 잰걸음으로 마찻길을 걸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 사람이 큰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우리 삶에서 하찮은 것은 없을 것이고 매사가 위대한 일을 의미하게 될 거야. 파스칼하고 결혼하는 셈이 되는 거지. 위대한 사람들이 진리를 바라본 그 비으로 나도 진리를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내가 나이 들었을 때 무엇을 할지 알아야 해. 지금 이 땅 영국에서 어떻게 위대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지 알아야만 해. 지금은 무엇이 선을 행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모든 것이 마치 내 말도 모르는 사람에게 선교하려 나서는 것 같아. 좋은 농가를 세우는 일이라면 몰라도 나는 아는 게 없어. 로윅 사람들이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해주길 바랄 뿐! 틈만 나면 그 계획을 세워볼 거야.(76%)
4장 도시를 걷는 산책자
찰스 디킨스 〈밤 산책〉
이 기간에 나는 매우 초보적인 노숙자 경험을 통해 노숙자 생활을 알게 되었다. 밤을 지새우는 것이 나의 주목적이었기에 나처럼 밤새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들과 공감할 수 있었다. 3월이라 눅눅한 날씨에 구름끼고 추운 편이었다. 새벽 5시 반이 돼야 동이 트기에 내가 12시 반경에 길로 나서면 밤이 제법 길게 느껴졌다.
(중략)
잠들지 않고 늦게까지 남아 있는 파이나 뜨거운 감자를 파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진정한 마지막 불빛마저 가물대며 사라지면 런던 시내는 휴식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노숙인들은 어디 동행자가 없는지, 불 켜진 곳은 없는지, 뭔가 움직이는 자취는 없는지, 누구라도 일어나 있는 이는 없는지, 아니 그저 잠에서 깨어 있는 이라도 있는지 보려고 불 켜진 창문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다.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노숙자들은 끝없이 얼키설키 연결된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여기저기 길모퉁이에서 대화를 나누는 경찰이나 범인을 쫓는 형사들 모습 외에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략)
통행료 징수인의 훌륭한 횃불과 큼지막한 코드, 그리고 양모 목도리를 보는 것은 이들에게 마음 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징수인이 철제 책상에 반 페니 동전을 땡그랑 하며 떨어뜨릴 때 마치 온갖 슬픈 생각으로 가득찬 밤을 견뎌내고 동이 트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잠에서 깨어난 듯한 더할 나위 없는 상쾌함이 함께하기 때문이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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