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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무법자(마커스 레디커)

겨울밤 2022. 8. 6. 14:58

《대서양의 무법자》 표지
《대서양의 무법자》 표지

대서양의 무법자(마커스 레디커) 

 

제목:대서양의 무법자(Outlaws of the Atlantic)

저자:마커스 레디커(Marcus Rediker)

역자:박지순

출판사:갈무리

 

 

 

독서일:2022.6.08.~2022.7.31.

소장여부:소장

페이지:304

 

 

다시 올해의 직장 독서교육이 시작되었다.

 

사실 독서교육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업체에서 받아볼 수 있는 도서는 제한되어 있다.

 

 

직장과 해당 업체 간의 계약 문제인지, 먼저 2만원 미만 책만 받아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해당 업체 도서 목록에 없는 책은 신청 후 1~3달 정도 입고 시간이 걸린다.

 

세 번째는 해당 업체 도서 목록은 몇 달 전의 베스트셀러, 외국 번역 소설류,

 

취미/요리/컴퓨터/외국어 등의 실용 서적류가 주를 이룬다.

 

16번의 독서교육을 진행하고 나니, 내가 관심 있는 책이 별로 없다.

 

 

내가 꼭 읽고 싶은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내 돈으로 주문하니,

 

결국 직장 독서교육은 관심은 있지만 내 돈 주고 사기는 애매한 책을 신청하게 되는 편이었다.

 

 

7월 독서교육을 위해 책을 신청하려고 해당 업체 도서목록을 살펴보니,

 

마땅히 관심 가는 책은 없었다.

 

전체 도서목록 게시판을 기계적으로 넘기는 중 항목에서 대서양의 무법자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 게임 제목 같기도 하고, 남자 독자를 관심을 끄는 듯 한 제목이네 싶었다.

 

"잡색雜色"의 사전적 의미
"잡색雜色"의 사전적 의미

 

책의 부제는 대항해 시대의 선원과 해적 그리고 잡색 부대이다.

 

잡색 부대는 뭐지? 싶었는데 책 내에서는 비백인인 흑인과 중남미인 등의 유색인종 선원을 뜻했다.

 

잡색雜色을 사전에 찾아보니 「온갖 종류의 사람이 뒤섞임」 이란 뜻도 있었다.

 

《대서양의 무법자》 저자(마커스 레디커, Marcus Rediker) 소개
《대서양의 무법자》 저자(마커스 레디커, Marcus Rediker) 소개

 

책을 받고 나서 책 안쪽의 저자 소개를 보니 마커스 레디커(Marcus Rediker)’

 

현재 피츠버그 대학 역사학과 대서양사 분야의 석좌교수이다.

 

아메리카 초기의 역사, 대서양사, 해양사, 해적의 역사, 사회사와 문화사 이론 등의 분야에서 여러 논문과 저사가 있다.”

 

라고 소개되어 있다.

 

갑자기 이 책이 일반인을 위해 가볍게 대서양 해적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대학 논문과 학회 저서 수준의 딱딱한 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서양의 무법자》 목차
《대서양의 무법자》 목차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장 선원의 허풍

  2장 에드워드 발로우 가엾은 바다 사나이

  3장 헨리 피트먼 탈주 반역자

  4장 망자 왕의 깃발 아래:해적

  5장 아메리카 혁명의 잡색 부대

  6장 아프리카의 반란:노예에서 뱃동지로

  7 검은 해적”:1839년 아미스타드 선상 반란

 

책은 대항해시대 이후 약 17세기 후반~19세기 전반까지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대항해시대의 심해 범선은 최첨단의 기계 장치이며 기술의 집합체이며,

 

선장부터 고위 간부선원, 하급선원, 적하물이자 상품인 노예까지 함께 모여 있는 비교적 진보적인 공간이며,

 

언제나 침몰, 교전, 약탈 당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당시의 불완전한 기록 수준과 검증하기 어려운 선원들의 이야기를 넘어 대항해시대의 원동력을 설명하고 있다.

 

《대서양의 무법자》 내 "전함, 3등급, 삭구 등, 정박 중" 그림(P.19)
《대서양의 무법자》 내 "전함, 3등급, 삭구 등, 정박 중" 그림(P.19)

 

위 그림(P.19)전함, 3등급, 삭구 등, 정박 중을 보면

 

당시 어떻게 이렇게 정밀한 장치를 설계하고 건조했지 라는 생각이 든다.

 

《대서양의 무법자》 내 "아프리카 함선의 하갑판 개요" 그림(P.21)
《대서양의 무법자》 내 "아프리카 함선의 하갑판 개요" 그림(P.21)

 

아프리카 함선의 하갑판 개요(P.21)을 보면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유럽의 인간 백정들이

 

아프리카 흑인 잡아서 인간적인 최소한의 공간도 없이

 

배 하갑판에 꼼작도 못하게 가득 채워 집어놓고 아메리카로 갔구나란 분노가 든다.

 

《대서양의 무법자》 내 "영국군함 베드포드호의 하갑판" 그림(P.22)
《대서양의 무법자》 내 "영국군함 베드포드호의 하갑판" 그림(P.22)

 

“영국군함 베드포드호의 하갑판” 그림을 보면 사람 모양 대신 해먹으로 1인당 주거공간을 표시하고 있다.

 

공간과 밀도 자체는 아프리카 함선의 하갑판 개요와 큰 차이가 없다.

 

당시 선상 생활은 선장이나 장교, 간부 선원이 아닌 이상에는 최소한 몸 누일 공간만 갖는 건지도 모른다.

 

요즘 해군 선박도 장교가 아닌 수병은 3층 침대에서 1개 침대를 2명이 번갈아 가면서 쓰는 경우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나도 비슷한 체험을 하였다. 

 

1998년 1월 논산 훈련소의  야외 숙영 훈련 때,

 

영하 5도에서 A형 텐트 1동에서 훈련병 3명 딱 붙어 잤던 게  저 모양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당시 유럽의 지배자들이 유럽-서인도(아메리카)-아프리카의 대서양을 넘나들며,

 

무자비하고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전초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일선에서 종사하던 선원들에 의해 각 대륙의 무역도시들이 연결이 되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적인 협력적 노동 분업이 발생하고 있다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

 

《대서양의 무법자》 내 "노예선에서의 폭동" 그림(P.184)
《대서양의 무법자》 내 "노예선에서의 폭동" 그림(P.184)

 

 

또한 이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파업, 탈주, 선상 반란, 해적질, 노예봉기, 도시 시위, 폭동 그리고 혁명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184페이지의 "노예선에서의 폭동"은 책 표지이자, 각 장의 시작 삽화로써, 책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하갑판에서 몰려나온 노예들이 상갑판 전반을 가득 채워서, 관리 선원을 배 전에서 밀어 떨어 뜨리고 있다. 

 

그리고 상갑판 하반은 나머지 관리 선원이 총으로 방어태세를 유지하며 견제하고 있다. 

 

21페이지 "아프리카 함선의 하갑판 개요" 처럼 480여 명의 노예가 몰려나와서,

 

상갑판 하반으로 몰아붙이면, 무기를 들고 있지만 수십명에 불과한 관리선원은 곧 제압될 것이다.

 

 

 

《대서양의 무법자》 뒷 표지
《대서양의 무법자》 뒷 표지

 

 

책은 유럽, 아메리카 그리고 대서양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프리카는 피수탈의 공간으로 나온다.

 

아시아, 태평양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17~19세기 전반의 대서양에서는 이런 상황과 시대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미국 독립과 노예 해방 선언과도 연결되고 있다. 이런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레디커는 특유의 “아래로부터”의 접근과 통찰로써


“잡색” 즉 다민족 부대가 미국 혁명의 원동력이었음을,

해적, 노예화된 아프리카인, 그리고 다른 무법자들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힘을 모았음을,

대형 범선의 시대에는 하갑판의 무법자들이 권위에 도전했음을 드러낸다.

  

 

책을 읽고 나니, 17~19세기의 제국의 확장과 자본주의의 부흥은

 

서구 선진 백인의 제국과 종교 확장의 탐욕과 기술적 우위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국 여왕, 프랑스 왕, 로마 교황 등의

 

유럽 지배자의 이야기가 아닌 하갑판의 무법자와 해적들이 이야기란 것에 새로움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당시 우리나라(조선)는(조선) 무엇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 반대편 바다와 대륙에서는 탐욕에 의할 지라도

 

생존 경쟁처럼 국가(제국)의 발전, 기술적 우위, 영향력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 후세 사람으로서 17~19세기를 비교하니

 

우리나라의 역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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