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제목: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원제:IL SECONDO DIARIO MINIMO
지은이: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옮긴이:이세욱
출판사:열린책들
독서일:2024.3.10.~2024.3.11.
페이지:445
ISBN13:9788932908885
소장여부:대출
※ 2024년 16번째 독서
독서배경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올해는 도서관의 전자책도서관은 자주 이용했지만, 실제 도서관은 오래간만에 방문이었다.
전자책도서관이 편해도 실제 도서관에 비해 없는 책이 훨씬 많다. 또 좀 이름 있는 작가의 책이다 싶으면 출판사의 정책 때문인지 전자책으로 출판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또한 2015년 이전에 출판된 책도 대부분 전자책이 없다.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영어문학 서가 근처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영어문학 다음에 프랑스문학, 독일문학, 기타서구문학이 함께 있는 서가였다.
저자인 움베리토 에코는 많이 들어봤다. 20여 년 전이지만,, 일본에 있을 때 《장미의 이름으로》를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이 재밌어서 당시 비교적 신간이었던 《바우돌리노》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 일본에서 한국책을 사기도 어렵고, 해당 책은 상하 2권으로 가격도 다른 책에 비해서 좀 비쌌던 것 같다. 그래서, 일본 대형서점에서 영문페이퍼본 《Baudolino》를 천 몇백 엔에 샀다. 물론 다 읽지 못했다... 안 그래도 상징과 의미, 은유, 문맥, 중세 시대, 유럽, 이탈리아의 고유명사, 인물 등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영어로 적혀있어 읽기 힘들었다. 늘 그렇듯 첫 30페이지 정도 읽다가 포기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보니 좀 반가웠다. 출판 연도가 좀 오래되었고 너무 자주 대출 반납되어 거의 폐급에 가까운 소설이 아니라, 그의 비문학 컬렉션으로 책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비문학 컬렉션 중에서 어렵지 않은 에세이 모음으로 읽기 쉽게 느껴져서 대출하였다.
표지
표지는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활짝 웃고 있다. 표지 속 저자의 웃는 얼굴과 배경은 앤디워홀의 팝아트처럼 알록달록한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60~70세의 후덕한 얼굴(전형적인 곰상熊想)과 풍성한 수염 속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은 마치 책 제목처럼 (표지를 보고 있는 나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음… 내가 세상의 바보일지도 모르지…’라는 생각이 잠시 든다.
저자
움베르토 에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다.
저자 소개의 첫 문장이다.. 굉장한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이자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사람. 저명한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 촉수가 닿지 않는 분야는 없다. 이 지독한 〈공부 벌레〉는 〈언어의 천재〉이기도 하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한다.
는 설명을 보면 대단한 (조금이라도 따라가고 싶다는)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현대 사회와 문명을 향해 던지는 재담과 풍자, 일상적 현상으로부터 단 몇 걸음만에 정교한 학술적 논의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는 현란한 필치, 현실 세계와 기호와 추상 개념을 마치 공기놀이하듯 다루는 걷잡을 수 없는 논리의 향연, 마치 한 인간의 머릿속에 구현된 거대한 인류의 도서관을 들여보는 듯한 경이, 이 모든 것을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속에서 만날 수 있다.
라는 부분은 출판사의 홍보 문구이기는 하겠지만, 대단한 지적 자신감이 군이란 생각이 든다.
책 속의 원제는 이탈리아어로 'IL SECODO DIARIO MININO' 로 한국어로는 '두 번째 가장 작은 일기' 정도로 해석된다. 뭔가 이탈리아에서 의미가 있는 제목 (가령, '첫 번째 일기'라는 출판물이 있었다던지...) 이었겠지만, 한국어로의 특별한 의미는 찾기 힘들다. 한국어판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아래의 차례 속에 개별 칼럼에도 없는 방법인데, 누가 지었는지 궁금해진다.
차례
- 1 실용처세법
- 여행하기
-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쓰러지게 하는 방법
- 기내식을 먹는 방법
- 호텔이나 침대차의 그 고약한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방법
- 택시 운전자를 이용하는 방법
-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
-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
- 미래의 카이만 제도를 구경하는 방법
- 신안 상품을 구입하는 방법
-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 서로를 이해하기
-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 재산목록을 작성하는 방법
- 사용 설명서를 따르는 방법
-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선택하는 방법
-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
- 〈맞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지 않는 방법
- 말줄임표를 사용하는 방법
- 서문을 쓰는 방법
- 미술 전시회의 도록에 서문을 쓰는 방법
-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
- 스펙터클 사회에 살기
- (개별 칼럼 7개)
-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처하기
- (세부 칼럼 7개)
- 정치적으로 반듯한 사람이 되기
- (세부 칼럼 6개)
- 책과 원고를 활용하기
- (세부 칼럼 3개)
- 전통을 이해하기
- (세부 칼럼 3개)
- 미래에 대처하기
- (세부 칼럼 5개)
- 여행하기
- 2 성조기
- 3 카코페디아 발췌 항목
- (세부 칼럼 9개)
- 4 내 고향 알렉산드리아
- (세부 칼럼 1개)
책 속에 제법 많은 칼럼, 에세이가 실려 있다. 세부 칼럼 제목은 모두 옮겨 적으려 했으나 차례만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생략했다.
감상
우선, 칼럼과 에세이의 각 편은 2~4장 정도 짧은 글이라서 읽기가 편했다. 모두 독립적인 주제이고 별도의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없어도 하나하나씩 읽어도 이해하는 무리가 없었다.
칼럼과 에세이에 과장법과 반어법, 역설, 유머가 많다는 느낌이 받았다. 책의 제목부터 '세상의 바보들' 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이다. 이는 저자의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인 것 같다. 일반인들이 보면 별일 아닌 주제도 저자는 과장법으로 흥미를 끌게 만들고, 반어법으로 ‘‘네가 생각하기에는 도 그러냐?’ 이런 식으로 되묻는 것 같다.
대부분의 주제는 실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저자가 재치 있게 비틀어 이야기하며, 역사, 철학, 예술·문학 등의 다양한 분야 지식을 인용하며 주제를 확장하거나 연결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저자의 과장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솜씨에 웃음이 지어진다. ‘에코 선생님, 제법 과격하시네요…’, ‘음… 농담으로 말씀하시는 거겠지만 좀 부담스럽네요…’, ‘네, 이 참에 같이 탕탕 부숴버리지요.. 새롭게 다시 시작하지요. 뭐, 별 거 있습니까?^^;’ 이런 반응들이 혼잣말처럼 생각이 난다.
칼럼과 에세이는 대부분 1980~1990년에 쓰인 것이다. 그 시절에도 요즘과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서구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미 한 세대 전에 PC(정치적 올바름), 신기술에 대한 수용을 고민하고 여행과 일상을 편안하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이야기거리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나라는 2000년 중후반 이후에 이런 일상과 자유로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만하지 않았나 싶다.) 역자가 각주로 설명한 인물이나 사건 등도 각주 속의 최소한의 정보가 아니라 (유럽이나 이탈리아에서 고등 교육을 받았다면 쉽게 알 것 같은) 배경 지식이 있었다면 좀 더 저자가 쓴 문장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 속에서 발췌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
(P.217) 사르데냐 섬의 양치기나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 납치범들은 대개 여러 사람을 납치하는 동안 똑같은 복면을 쓰기 때문이다. 볼로냐 역에서는 기차를 타지 않는 것이 좋다. 테러리스트가 설치해 놓은 폭발물이 터질 경우에 사방으로 마구 퍼져 나가는 피와 살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가 어렵다. 핵탄두 미사일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럴 수가!〉라고 중얼거리면서 씻지도 않은 손을 입으로 가져갈 염려가 있다.
→ 에코 선생님, 전염병을 걸리지 않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전염병보다 더 심각한 사례를 들면서 차라리 '전염병 정도(?) 걸리는 게 다행인 줄 알아라 이것 들아' 라고 말씀하시는 건 아닌 거죠?
아이스크림을 먹는 방법
(P.240) 그런데 이제 소비를 미덕으로 아는 사회의 구성원이자 희생자가 되고 보니, 지금은 고인인 된 집안 어른들의 태도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4솔도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대신 2솔도짜리 두개를 먹는 것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낭비가 아니지만 상징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히 낭비다. 두 개의 아이스크림은 과잉을 의미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원했던 것이다. 또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먹는 것은 가난한 자들을 모독하고 거짓된 특권과 허구적인 부를 과시하는 염치없는 행동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어른들은 내 부탁을 거절했던 것이다. 결국 아이스크림을 두 손에 하나씩 들고 먹는 것은 버릇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던 셈이다.
(중략)
어린 시절에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양손잡이 먹보의 부모처럼 소비 사회는 더 많은 것을 줄 뿐이다. 사람들은 오래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버리고 오토리버스와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카세트 라디오를 새로 산다. 하지만, 영문을 알수 없는 결함 때문에 그 경이로운 신제품은 1년을 가지 못한다.
(중략)
옛날의 도덕은 우리 모두가 스파르타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만, 오늘날의 도덕은 우리 모두가 사비리스*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 스파르타인은 근검과 절제로, 시바리스(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인은 나태와 향락으로 유명했다.
→ 1980년대 글이지만, '오토리버스와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카세트 라디오'를 ' 매번 혁신, 사상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으로 바꾸면, 지금 우리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책 속에서 발견한 단어
- 가마리 : (접미사) 명사 뒤에 붙어, 그 말의 대상이 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말 예) 놀림가마리, 걱정가마리, 욕가마리, 울음가마리
- 시시풍덩하다 : 시시하고 실답지 않다.
- 전전반측輾轉反側 : (=전전불매輾轉不寐)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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