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the road rise up to meet you,

And may the wind be always at your back.

0100_일본IT취업및생활

일본 사회 생활 마무리 Part 5-3(에필로그)

겨울밤 2021. 8. 7. 12:03

2008년 1월 1일 새해 해맞이 사진(2008)
2008년 1월 1일 새해 해맞이

  2008년 1월 1일은 한국 본가에 있었다. 

 

2007년 연말 연시 연휴를 이용해서 집에 왔다. 

 

2008년 새해 해맞이를 하면서 앞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다짐하고 소원을 빌었다.

 

이제 일본에는 일하러 가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여행이라면 가끔 맘 내킬 때 자유롭게 가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은 우선 서울이 아닌, 내 고향 근처에서 IT분야로 취업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름 젊은 시절 4년의 IT 경력과  약간의 저금만 믿고, 

 

아무런 준비 없이 털썩 귀국한 무모한 결정이었다. 

 

당장은 4년간 열심히 외국 직장 생활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

 

유럽 배낭여행이라도 1달 정도 다녀올까라고도 생각했다. 

 

 

  귀국해서 첫 일주일 동안, 부모님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잡코리아 및 사람인 등의 지역 구직란을 보고 나서, 1달 유럽 배낭여행은 접었다. 

 

2008년 4월 1일 부터  취준생 모드로 닥치고 한국 취업 활동에 전념하였다. 

 

 

  중간에 다시 일본에 IT재취업해서 도일(渡日)할까도 몇번 생각하였지만, 

 

한국에서 일본 도쿄 기업에 이력서를 내지는 않았다. 

 

2008년 7월 고향 지역에서 신생 기업에 IT분야 대리로 재취업하였다. 

(이 부분은 국내취업과 생활에서 나중에 쓸 것이다.)

 

 

  2008년 9월 부터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글로벌 경기가 크게 악화되었다. 

 

그 때 인터넷메신저로 일본에 남아 있던 IT연수 동기에게 물어보니 분위기가 크게 안좋았다.

 

일본 기업의 경기 악화 및 비용 절감으로 IT 서비스 관련 비용을 줄이고, 

 

거기에 따라 IT 개발 및 SI 유지보수 업무가 급감하여, 외국인 IT인력이 많이 해고되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외국인 IT인력의 단가도 20~30% 단위로 깎였다고 했다.

 

 

  그리고 2009년 이후 조금씩 회복된 경기에 따라 다시 IT 서비스 관련 요구가 늘었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방사능 문제로 2000년 초중반 진출한 한국 IT 인력이 

 

많이 귀국하였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후, 엔화 환율이 크게 올라 100엔에 1500원 이상 올라간 적도 있었다. 

 

이때 계속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면 한국돈으로 월 1000만원에 가까운 급여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일본회사의 긴축 정책에 따라서, 안좋은 방향으로 갔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보면, 2008년 3월에 4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단순, 무식한 마음으로 자발적인

 

귀국을 하지 않았다면,  2009년 3월 이나 2011년 3월에 우울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반강제 귀국했던지

 

아니면, 지금도 계속 일본에서 생활하는 영주권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직장 생활을 계속 해나가고 있을지는마흔이 넘은 이 시점에서는 모르겠다.)

 

  

  4년간의 일본 직장 생활이 인생에서 남긴 성과는 4년간의 IT경력과 스킬, 통장잔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사람에 대해 소중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