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이야기
그분의 방문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다 보면 서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경험상 정말 그런가라는 물음표이다. 하지만 감기는 서로 닮아가는 것 같다. 같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 마시고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지난 주말 연신 감기 콧물을 달고 있는 이를 돌보다 보니, 월요일 오후부터 입천장이 메마른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건조한 사무실 환경 탓인가 생각하고 따뜻한 차를 좀 더 마셔봤지만, 퇴근 무렵에는 확실해졌다.
코로나 19시기 동안 밖에서는 마스크를 열심히 하고 다녀서 인지 한 3년간은 감기에 걸린 기억이 없는데, 집안에서는 무방비로 있다 보니 그대로 노출된 것 같았다.
성질머리에 대한 방어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오고, 입과 목안이 거칠거칠해지는 불편함은 다 괜찮다. 좀 더 자주 코를 풀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 되니까. 다만, 자다가 입과 목안이 따가워서 새벽에 깨는 건 정말 싫은 느낌이다.
그래서, 자기 전에 종합감기약을 한 알을 먹고 잔다. 종합감기약이라고 해봤자 진통제 성분이겠지만, 그래도 자는 시간 6~7시간 정도는 입과 목안의 통증을 잊게 해주고 숙면하면 좋겠다고 기대하며 먹는다.
그나마 중간에 안 깨었지만 약발이 다 되어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오전 6시 보다 빨리) 깬 화요일 아침에는 몸이 좀 무겁다. 약간 미열도 도는 것 같다. 출근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종합감기약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집착
출근해서 오전 중에 종합감기약을 먹을까 말까 고민한다. 진통제를 자주 먹는 거에 대한 거부감과 입안 통증을 잊고 싶은 마음에서 갈등한다. 탕비실을 자주 들락 거리면서 따뜻한 차와 커피로 입안을 달래 본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사탕도 몇 개 챙겨서 자리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부터 몸이 병균과 싸우는 지 무거워진다. 밥을 먹었으니 식후 감기약은 괜찮을 거야라고 위안하며 감기약을 한 알 먹는다. 자리 밑의 휴지통에 코 푼 휴지가 이미 한가득이다. 업무 전화를 받는 거친 내 목소리에 내가 놀란다.
18시가 다 되어 상사에게 내일 병가를 낸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퇴근한다.
연초에 바쁜 시기에 감기때문에 하루 병가 내겠다고 말하는 게 구차하게 느껴진다.
함께하는 이는 이제 감기 끝물인지 쌩쌩하진 느낌이다. 다행이다.
저녁은 콩나물국으로 간단히 먹고 뒷정리를 한다. 양치하고 소금물로 가글도 하고 감기약도 먹고 평소보다 방 온도를 올리고 누웠다.
이별 준비
다음날 아침 확실히 어제 저녁보다 몸이 좋아진 느낌이다. 역시 감기 회복은 푹 쉬는 게 답인 것 같다.
이번 감기는 목도 별로 따갑지 않고, 콧물도 어느 정도 마르며 3일 정도만에 회복기로 들었으니 순한 편이다.
'이번에는 성질 좀 죽었군요.' 라고 생각한다.
작지만 행복한 시간
이번 겨울 감기는 이걸로 넘기면 좋겠다. 그래도 한번 감기 걸리고 나으면 2~3주는 면역이 있어서 인지 다른 감기가 걸리지 않으니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이제는 안 좋은 면 대신 반대쪽의 좋은 면을 굳이 찾아 위안을 삼는다. 작지만 행복한 시간은 이렇게 만드는 거라고 마음을 다독여준다.
"감기씨,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세요... 우리는 함께 하기 어려워요. 제가 싫어요. 그럼, 안녕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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