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경험(유발 하라리)
제목:극한의 경험(The Ultimate Experience)
저자:유발 하라리
역자:김희주
출판사:옥당
독서일:2021.09.12.~09.22.
소장여부:대출
며칠 전 J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려 달라고 하였다.
도서관 서가에서 J의 책을 찾고 나서 나오려고 하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유발 하라라의 전쟁 문화사 극한의 경험’ 책 상태도 거의 새 것처럼 보였고, 2017년도에 나온 책이었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 인문사회학자로 명성이 높은 작가인데, 이런 책이 있었나 싶었다.
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를 보니, 유발 하라리는 전쟁역사학자이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되어 있다.
작가의 전문 분야니까 뭔가 심도 있을 것 같아 책을 대출받았다.
책 표지에는 “‘호모 사피엔스’‘호모 데우스’이전에 전쟁하는 인간 ‘호모 벨리쿠스’가 있었다.”라고 적혀있다.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쓰는 시점에서 생각하니,
이 글은 작가 유발 하라리의 인기작인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와 연결하기 위한 문구가 아닌가 싶다.
책 내용은 서양 중세와 근대인 17~20세기 초반(주로 18~19세기) 위주로
작가의 박사전공인 중·근세 전쟁 문화를 서술하고 있다.
책 안에는 호모 사피엔스 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를 언급한 건 없었던 것 같다.
‘호모 벨리쿠스’라는 말은 멋있지만 왠지 홍보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싶어서 원서의 제목을 찾아보니,
‘The Ultimate Experience Battlefield Revelations and the Making of Modern War Culture, 1450-2000’이다.
‘극한의 경험 전장의 비밀폭로와 현대 전쟁 문화의 생성, 1450-2000’이지 않을까 싶다.
책은 유럽의 근세 전쟁 문화를 서술하고 있다.
은근 밀리터리와 세계사에 관심이 있다 보니, 흥미가 있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읽을 수 있었다.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보면, 근세는 서양이 주인공이다.
서양 특히 유럽은 영국, 프랑스가 중세 이후 국력을 정비하여 부국강병과 산업화를 이루어 세계로 벗어 나가고,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군웅할거를 하면서 부국강병과 산업화를 따라가고,
네덜란드,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도시국가 등도 군웅할거의 틈바구니에서 실력을 길러 생존한다.
북미에서는 미국이 독립하여 신흥대국으로 발전한다.
그 외의 비서구 문화인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는 근세 서양 유럽의 깃발 꽂기 대상에 가까울 정도이다.
19세기 중후반 아시아에서 일본이 메이진유신 이후, 비 서양 세력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18~21세기 중반까지는 우리 나라는 암흑기 내지는 쇠퇴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벨 에포크(Belle Epoque),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망국의 시기와 겹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원인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 당쟁·세도정치·쇄국정책 ·유교근본주의 등 여러 생각이 들지만,
부국강병과 산업화에 뒤쳐진 것이 제국주의 시대 국가 역량의 차이가 되고,
이는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나서 우리 나라의 그 시기를 생각하다 보니, 서평으로는 불필요한 부분이 길어진 것 같다.
책은 전쟁을 통해서 변화되는 전쟁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흔히 전쟁사는 전쟁 시작·종료시기, 전쟁 세력·병력·지휘관, 전쟁의 전개,
전쟁의 승패, 전쟁의 승패 포인트 등을 수치와 지도 등을 통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이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시대에 어떻게 전쟁 문화가 바뀌는 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책의 목차에서 제1부 ‘극한의 경험, 진리의 문을 열다 ‘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얻게 되는 경험을
관념론으로 받아 들이느냐, 유물론으로 받아들이느냐를 제시하고 있다.
제2부 ‘전쟁, 정신이 지배하‘에서는 1450~1740년까지
종교적 신념과 세속적 욕구에 의해 전쟁을 이끄는 (상류층)의 정신을 설명한다.
유럽의 황제와 왕, 공작, 백작, 추기경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벌인 전쟁의 큰 틀을 설명하고 있다.
제3부 ‘전쟁, 육체를 깨우다’는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느껴졌다.
1740~1865년 사이 기간 동안, 미국 독립,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부상과 몰락, 프로이센의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그 전 시기는 상류층인 귀족 장군과 장교만 작전과 생각을 통해서 전쟁을 통제하고,
병사는 체스의 말처럼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전쟁기계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고,
병사는 사회 부적응자나 부랑인을 채찍과 훈련을 통해서 통제에 따르도록 조련해야 되는 대상으로 여겼다고 했다.
당시 전쟁 전술인 전열보병의 회전은 이런 피나는 채찍과 훈련을 통해서 적의 군세와 위력, 죽음 앞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총포를 발사하며 전진해가는 방식이었다.
전열보병으로 전진하는 병사는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움 없이 맞서는 것은 채찍과 훈련이었다는 것은 비정한 일이다.
책에서는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의 경보병은 장군과 장교에 의존하지 않는
적절한 판단과 전술적 활약이 프로이센과 영국, 러시아 군대에 영감을 주었고, 전쟁 문화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설명하였다.
‘프랑스 혁명군을 지켜본 또 다른 프로이센 사람, 미래의 프로이센 육군 원수
크네제벡도 1794년 프랑스 경보병의 전략이 뛰어나다고 인정했다.
“프랑스 공화정 군대가 엄청난 덕을 보는 것이 개인의 교육(계몽)이다.
경보병 전투에서는 장교가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기 때문이며,
그런 상황에서 각각의 병사가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인다.”(P.278)’
‘새로운 군대가 성공한 비결이 이것이었다.
감각주의적 교육과 기능이라는 이상이 강압과 감시를 포섭과 독립적인 주도권으로 대체하고,
포섭과 독립적인 주도권은 더 온건한 규율로 월등히 많은 인원을
경제적으로 모집하고 기동 할 수 있게 한 것이다.(P.289)’
현대적 전쟁의 시초라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국가 총력전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국가 총력전에 대비한 군대와 예비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총력전 체계는 이미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국민총동원령을 통해서 준비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전의 상류층 귀족 장군이 직속으로 부리던 소수의 기사단과 정예군(근위대),
강압과 감시, 금전으로 유지되던 수 만명 수준의 용병과 병사의 군대가,
국방군· 국민군의 이름으로 징병을 통해서 수십만, 수백만 단위로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 교육과 법률, 애국심을 적용하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온건한 규율을 통해서
거대 규모의 인원을 경제적으로 모집하여 기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4부,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는 거대해진 전장에서
제3부에서 교육 받은 생각하는 병사가 겪는 경험을 다시 설명하고 있다.
거대해진 전장은 더 위력적인 화력이 뒤덮게 되었고,
거대 규모의 인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된 (상류층) 장군과 장교에게
생각하는 병사의 인권과 공포, 피폐는 우선순위가 아니게 된다.
병사는 전쟁의 부속이 되어간다.
전장에서 옆 전우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성을 없애고 무감각화를 가속시킨다.
전쟁의 대량 부속인 병사에 대한 처우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환멸을 느끼게 되는 여러 당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이 나의 20여년전 입대와 군생활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놀랍기도 하였다.
200년 전의 군사 문화 패러다임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고,
수많은 전쟁과 시행착오, 반성을 통해서 개선된 군사 문화가
우리나라의 현대 버전으로 나타난 것을 내가 겪었나 싶었다.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전쟁을 준비하는 대비도 게을리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19~20세기 초반의 망국과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을 통해서
군사력 확보와 전쟁 준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 국가이다.
이 때문에 개인에 대한 의무도 결코 가볍지 않다.
개인의 의무와 국가·사회의 공리적 안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전쟁 중 현재 서양 사회가 내적으로 화해한 전쟁은 거의 없고, 서양 사회가 수 천년동안 이어진 전쟁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거하는데 성공 했지만, 여전히 서양 문화는 전쟁에 대단히 긍정적 가치 하나를 부여한다. 전쟁과 진실의 연관성이 근대 후기 서양 문화의 깊은 곳으로 거듭거든 주입 되었다. 근대 후기 전쟁의 거대 서사는 모두, 인간이 나약해서 감히 진리와 대면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전쟁이 영원한 진리를 드러낸다는데 동의한다. 그에 반해 평화는 덧없는 환상만 키운다. 여기에서 한층 더 놀라운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쟁은 영원한 진리이고, 평화는 일시적 환상이라는 결론이다. 자연, 혹은 요즘 어법으로 진화는 불편한 현실을 인간 유기체와 환경 속에 내장시켰다. 평시 문화는 이 불편한 현실을숨기거나 회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더 이상 믿지 않는 문화에서는 이러한 억압이 아주 고통스러운 계시를 초래할 뿐이다(P.475). |
힘이 있는 자에게 전쟁은 쉬운 선택이 될 것이다.
어려운 논리와 설득, 상대의 변덕을 감수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게 강제할 수 있다.
전쟁 속에서 피폐해지는 요소는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부분일 것이다.
결국 피해는 작은 개인과 시민 사회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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