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the road rise up to meet you,

And may the wind be always at your back.

0920_小幸時

시간, 반복과 변화의 끊임 없는

겨울밤 2024. 9. 13. 21:35

※ 2024.9.13. 밤, 시간이 지나감(늙어감)에 대한 생각의 기록

우리 안의 두 가지 시간성, 즉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성과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시간성은 반복을 통해 조화를 이루고 관성에 빠진 듯 보이면서도 전진하는 느낌을 준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2024.01.30 - [0500_독서] -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제목: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원제:UNE BREVE ETERNITE:Philosophie de la longevite 저자:파스칼 브뤼크네르Pascal Bruckner 역자:이세진 출판사:인플루엔셜 독서일:2024.1.27.~2

winternight.tistory.com

끊임 없이 밀려오는 대양의 파도
끊임 없이 밀려오는 대양의 파도

시간,  영원으로의 전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달려 간다.

‘세계의 주인은 나’라는 일원론 주장이 무색하게, 시간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나의 세계’를 덮쳐 휩쓸고 간다.

 

위대한 인류의 문명과 자산도 시간 앞에서는 찰나이다.

100년도 못 사는 개인과 1000년도 못 가는 국가와 10000년을 장담할 수 있을지 모르는 현대 문명은 45억 년 또는 50억 년의 지구 시간 앞에 놓기 어렵다.

 

인간, 시간 앞에서는 모래알

앞의 말이 너무 거창했다.

시간의 힘에 생각이 압도되었다. 

흔히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말을 한다.

아직까지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 없다.

모두에게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는 다른 문제이다.

시간의 질은 개개인 모두에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찰나, 개인의 시간

인간에게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다.

영화 〈빠삐용〉의 주제라고 할까, 억울해하는 주인공에게 가장 확실한 죄라고 말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한 죄'라고 하였다. 

 

어린 시절, 언제 어른이 되나요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무한히 늘어진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얼른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학생의 시간은 반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공부나 취미 활동을 한다.

어른과는 다른 방학이라는 특권이 있지만, 미성년자로서 제약이 있다 보니 매일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 빼고는 학생의 시간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어른 시절,  달콤함은 잠시 묵묵히 묵묵히

대학생의 시간은 좀 변화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즐기는 시간은 짧아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신입생 때는 고3에서 해방된 마음에, 대학에 왔다는 마음에,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에 설레고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스스로 대학 수업을 챙겨 듣고 전공 공부도 하고, 멋지고 이쁜 교우 관계도 만들어 나가고 싶지만 힘들어서 하나씩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곧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우울한 시간이 온다. 그래도 이때 준비해야만 그 다음 시간에 웃을 수 있다.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사회인이 되고 나도 편한 시간은 없다. 그나마 돈으로 시간의 질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른다.

 

후배의  도전,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성공한 사회인으로서, 뽕 찬 어깨도 10~20년 정도 시간의 파도에 휩쓸리다보면 겸손해진다.

‘아직 나는 죽지 않았어’라고 큰소리 칠지도 모르지만,

(몸이) 더 팔팔하고 (머리가) 더 잘 돌아가며, (전체적으로 젊음이) 더 부러운 젊은 친구들이 턱 밑을 훅 치고 들어오고 있다.

 

차라리 이런 친구들이 인성 좋고 말이라도 잘 들으면 다행이다라는 마음마저 든다. 젊은 세대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 고집부리는 나이 든 사람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나 때는 이렇게 함부러 하지 못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 영...’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변명이다. 기원 전의 낙서에도 ‘요즘 젊은이들 버릇 없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냥 시간이 흘러감에 대한 울분이다. 차라리 이룬 게 많거나 가진 게 많다면 좀 더 마음에 여유는 있을 것이다.

 

중년의 시간,  점점 줄어드는 

과거 시간은 가장자리부터 무너져 내리는 빙산처럼 느껴진다. 무너지는 가장자리에 휩쓸려 가버리면 다시 손에 잡을 수 없다. 다만 과거에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가장자리가 무너진 빙산의 끝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또 무너진다. 계속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한다. 가장자리가 무너지는 것은 반복되지만 그 끝은 반복되지 않는다. 분명 변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서 있는 빙산도 점점 작아진다.  다 무너지면 더 이상 있을 곳은 없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리기 전에 좀 더 행복한 감정을 찾는 것이  비관적인 생각만 가득찬 것보다 나을 것이다.  

 

희망,  신기루 같은지도 

시간이 지났을 때,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학생 때는 미래에 멋진, 좋은,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 초년생 때도 성공, 결혼, 야망을 위해 노력한다.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장년 이후에는 초조해진다.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 시간도 줄어든다.

 

절망,  끝이 오기 전에  내면에서의 붕괴

줄어든 희망은 쉽게 절망으로 바뀐다. 근거 없는 희망도 문제지만 절망은 사람을 좀 먹는다.

절망 조차도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그 절대적 크기로 모래알 같은 개인의 슬픔과 절망을 망각하게 해 준다.

누구는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종교나 철학이 주는 위안도 생각해 본다.

그냥 다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세상은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런 자족하는 마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시간,  절대적인 무관심

시간은 개인의 생각과 아쉬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양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나에게 다가온다.

시간은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는 모래알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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