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여행, 8일차(블로우홀포인트, 바모해변)
- 다시 2023년 여름 속으로 -
여행일:2023.11.17.~11.27.
여행지:호주 시드니
날씨:맑음, 흐림, 비
기온:17~29도
● 시드니 여행, Kiama, Blow Hole, Bambo beach 트래킹 (8일 차)
2023.11.24.(금), 비 구름, 16도~24도
호텔 → Mascot 역 → Wolli Creek 역 → Kiama 역 → Kiama 등대 → Blow Hole point → Bombo 역
→ Kiama 묘지 → Bombo 해변 → Bombo 역 → Wolli Creek 역 → Mascot 역 → 호텔
시간은 빠르게 간다.
호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지 한 달이 지나갔다.
그 사이 11일간의 여행을 블로그에 모두 적고 싶었지만,
연말의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니 쉽지 않았다.
호텔
아침 하늘은 비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야외 활동보다 실내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여행도 7일 째 계속 밖으로만 다니다 보니 피곤이 쌓였다.
하지만 외국에서 시간은 돈으로 사놓은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주말 전에 재충전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걷는 일정은 줄이고 기차 타고 여행하는 시간을 늘렸다.
아침 식사로 어제 슈퍼에서 산 베지마이트Vegemite를 식빵에 발라 먹었다.
J가 이상한 맛을 사서 먹는다고 뭐라 했지만,
언제가 호주 여행 가이드 책에서 본 베지마이트를 현지에서 먹고 싶었다.
처음에는 잼처럼 너무 많이 빵에 발라서 먹기 힘들었다.
그래도 나름 짭짤한 감칠맛이 돌았다.
(못 먹고 버릴지 몰라 가장 작은 크기의 베지마이트를 샀는데,
의외로 내 입맛에 맞아 남은 것을 귀국할 때 갖고 왔다.)
9시쯤 숙소를 나섰다.
그전까지 매일 시드니 시내로 향하던 전철을 반대로 타고
울리 크릭 역Wolli Creek Station으로 갔다.
South Costal Line 전철
Kiama역으로 향하는 전철은 확실히 시드니 시내로 가는 전철보다 한산했다.
전철 밖은 얕은 비와 안개, 구름가 있는 풍경이었다.
그래도 남쪽으로 갈수록 차창 밖에 바다가 보이며 안개와 구름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바다와 비구름, 평평한 초원과 낮은 건물들을 보니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정도 달려 키아마 역Kiama Station에 도착하였다.
Kiama Station
Kiama 역 근처는 방금까지 비가 내렸는지 땅이 젖어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낮은 집들이 많아 전형적인 휴양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Kiama Lighthouse키아마 등대로 걸어갔다.
블로우 홀 포인트Blow Hole Point을 보는 게 목적이었다.
등대가 있는 장소답게 약간 언덕으로 올라갔다.
중간 벤치에 동네 할머니들이 마실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호주도 사람 사는 건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Blow Hole Point
블로우 홀 포인트로 가기 전에 키아마 등대가 앞에 있었다.
사실 등대는 큰 감흥이 없이 평범했다.
등대에서 50m 정도 바다 쪽에 있는 블로우 홀 포인트가 소리로 우리를 맞이했다.
‘쿠르릉, 펑, 펑’거리는 소리는 일반 스피커로는 구현할 수 없는 웅장한 저음으로 퍼져 왔다.
블로우 홀 포인트 주변의 바위는 좀 더 커 보였지만
제주도에서 흔히 봤던 검붉은 색의 주상절리 바위 같았다.
1~2분에 한 번씩 구멍hole에서 파도가 쏟구쳐 올라오며 저음을 만들었다.
5~10분에 한번 정도 어른 키 이상 높이 바닷물을 하늘로 쏘아 올리면 압도적인 낮은 소리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저게 뭔가 싶기도 했지만, 솟구치며 울리는 소리가 좋았다.
한참을 사진도 찍고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Kiama Cost Walk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근처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어차피 오늘 일정은 많지 않아 여유를 부렸다.
키아마 해변 길Kiama Coast Walk를 따라 트래킹 했다.
중간에 키아마 하버 공원Kiama Harbour Park와 키아마 바다 수영장Kiama Ocean Pool을 지나갔다.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퍼전트 포인트 전망대Pheasant Point Lookout를
지나 다시 주택가로 들어왔다.
주변 주택들은 모두 바다 조망을 갖고 있는 잘 관리되는 단독 주택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ime of fear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이고 청결한 이야기는 아니다.
보기 불편하면 아래 글상자 전체를 넘기는 것이 좋다.
주택가를 걸으며 바모 해변Bombo beach로 향하기를 시작하자 갑자기 배가 아팠다.
호주 여행 이후 바뀐 식생활 때문인지
화장실에서 시원한 볼 일을 못 본 편인데, 거짓말처럼 신호가 왔다.
호주 시드니 여행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어디 가도 비교적 깨끗하고 관리 잘된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주택가 한 중간이라서 그런지 공중 화장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마지막 지나온 화장실은 키아마 바다 수영장의 간이 화장실이었는데,
별로 관리되지 않는 간이 화장실을 800m 거리에 언덕 위 도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이미 잘못된 선택이었다...)
J가 앞으로 20분 정도 거리의 바모 역Bombo Station까지 참으면서 걸어가자고 했다.
바모 역에 화장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방법이 없었다.
정말 2~3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급신호였지만 엉덩이에 힘을 주고 걸었다.
전에 농담처럼 했던 고속버스에서 급신호가 왔을 때 버티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급하게 걸으면서 유튜브를 보며 버티는 조치를 하기 어려웠다.
J도 마음이 다급했는지 지도앱을 켜고 화장실을 찾으며 앞서 걸어갔다.
키아마 주택가에서 바모 역으로 가는 길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에는 씽씽 달리는 자동차와 작은 인도 밖에 없었다.
작은 인도는 한국 고속도로 갓길에 낮은 분리대만 세워 놓은 길이었다.
고속도로의 차들이 시속 100km로 옆을 지나가고 다음에 바람이 따라와 몸을 치고 지나갔다.
J가 그냥 바모 역까지 일직선이니 먼저 달려서 화장실에 가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 J를 뒤에 두고 수 백 미터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 상태에서 달리기는 불가능했다.
중간의 스프링강 근처의 풀 숲길이 보이자 정말 풀 숲으로 들어가 일을 치룰까도 망설였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나서 살펴보니 휴지가 없었다.
휴지가 든 가방을 J에게 넘겨준 뒤였다.
눈물과 엉덩이를 함께 참으며 바모 역으로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J가 따라오는 게 보였다.
겨우 바모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1. 바모 역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역에 도착하면 나갈 줄 알고 광분하며 내려오던 놈들을 영혼을 끌어 모아 진정시켰다.
화장실 없는 기차역이 있겠나 싶어 플랫폼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걸으며 살펴보았다.
화장실도 없고 관리인도 없이, 승차 플랫폼과 벤치 몇 개만 있는 무인간이역이었다.
마음이 서늘했다. 하얗게 불태운 것 같았다.
플랫폼 내의 비상응급전화Emergency Call Phone만 1대 있었다.
영어가 유창했다면 ‘정말 급한데 닫힌 문 중에 내부화장실이 있다면 열어 줄 수 있겠냐?’라로 전화하고 싶었다.
미친 척하고 ‘역무원도 없는데 플랫폼 끝자락의 선로 아래로 내려가 마무리 지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CCTV 카메라는 분명 있을 것 같았다.
정신을 겨우 가다듬고 역 시설 표지판을 보니 작은 글씨도
‘This Station has no toilets.’ 안내가 있었다. ‘이런, 미X’ 쌍욕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있다는 안내 문구도 있었다.
'The cloest public toilets are located at Kiama Cemetery, Princes Highway, Open 24 hours.'
순간 희망이 보였다.
안내판 내의 지도를 보니 인근 화장실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상 직선 거리 100m 쯤의 키아마 공동묘지Kiama Cemetery 한 중간에 공중화장실 있었다.
2. 문제는 바모 역과 키아마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는
왕복 6차선의 프린세스 고속도로Princes Highway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가란 말이야?’란 외마디가 나왔다.
‘오늘 오후 3시경, 프린세스 고속도로에서 어느 미친 한국인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6차선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다
시속 100Km로 달리던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라는 호주 뉴스가 상상되었다.
J가 마침 도착하였다.
‘여기서 기다리다 30분 뒤에 오는 키아마역 행 기차를 타고 가서 키아마 역에서 해결’하는 방법과
‘아까 스프링 강 풀숲에서 봤던 고속도로 밑으로 향하는 작은 다리를 통해서 반대편으로 가서 키아마 공동 묘지 중간의 공동묘지에서 해결’하는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나을지 물어보았다.
(역 안내 지도에도 어떻게 갈 수 있다는 설명은 없었다.)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쪽으로 선택했다.
다시 왔던 길을 고통을 참으며 300m정도를 걸어갔다.
그 시간이 아득했다.
겨우 고속도로 밑의 작은 다리에 도착했다.
3. 하지만 작은 다리 길은 강물에 잠겨 있었다.
건너편에서 운동 삼아 나왔던 현지인 할머니가 잠긴 물을 보더니 되돌아갔다.
‘이게 실화인가?’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제는 되돌아갈 기력도 남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는 바지 상단을 X물에 젖는 것과는
바지 하단을 강물에 젖는 것은 비교할 가치도 없었다.
바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청바지를 걷어 올리고 잠긴 물속을 걸어갔다.
금방 물길을 건넜지만 물에 젖은 맨발에 흙과 잡풀이 달라붙어 있었다.
한 시가 급했지만, 아까 본 산책 나온 할머니 같은 현지인이
인상 안 좋은 동양인 남자가 공동묘지 근처에서 흙 묻은 맨발로 돌아다닌다고 신고를 할 것 같아,
손수건으로 적당히 흙을 털고 발을 닦고 양말과 운동화를 다시 신었다.
키아마 공동 묘지 구역은 낮은 철사 울타리로 경계를 구분하고 있었다.
키아마 공동 묘지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딘지 찾으며 계속 걸으면서 찾았다.
겨우 열려 있는 경계 부분을 발견하고 중간의 화장실로 향해 달리다시피 걸었다.
향하는 동안도 저기가 화장실인지, 다른 시설인지 긴가민가 했다.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다행히그곳은 화장실 표시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걱정이 들었다.
'혹시 잠겼거나 누가 있으면 어떻하지?' 였다.
화장실 표지가 눈으로 들어온 순간,
엉덩이 속 녀석들은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탈출을 개시하였다.
.
.
.
마침내, 구원을 찾았다...
다행히 문은 열렸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설도 흙먼지가 군데군데 있었지만,
좌변기와 세면대 자체는 비교적 깨끗하였다.
변기에 앉아, 바모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J에게 휴대폰 로밍 SMS를 보내려고 보니,
휴대폰 신호 불가 지역이었다.
그냥 세상과의 관심을 끊고 변기에 집중했다.
10분 정도 지나서 잘 수습하고 나왔다.
볼일을 마치고 나오자 그제야 묘지 내에 무덤과 묘비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감싸고 있을지 모를 키아마 지역의 영령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저 같은 이방인에게도 이곳은 안식 주는군요.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길은 세상 근심 없이 가벼웠다.
짙게 흐린 오후 어느 외국 을씨년스러운 공동묘지도 지금은 행복한 장소로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 로밍 신호가 잡혀서, J에게 무사 처리 문자를 보냈다.
J는 연락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다고 답장이 왔다.
다시 강물 덮인 작은 다리를 건너서 바모역으로 걸어갔다.
J를 만나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다.
J가 오늘 일정은 여기서 정리하고, 시드니로 되돌아가는 전철을 기다릴지 물어보았다.
아직 15시 30분 밖에 되지 않아 뭔가 아쉬웠다.
이제는 어디를 가든, 몇 시간을 걷든 상관없었지만 J가 기다리다 지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열차는 1시간 후에 올 예정이라서 기다리기 마땅하지 않았다.
Bombo Beach
바모 역 근처의 바모 해변 Bombo Beach로 걸어가서 좀 더 구경하기 했다.
바모 해변은 전에 봤던 본다이 해변, 맨리 해변 등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호주의 하지만 큰 파도와 넓게 펼쳐진 해변은 언제 보아도 지겹지 않았다.
비가 온 뒤라서 해변 모래는 젖어 있었지만 자리를 깔고 앉았다.
30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냥 이 순간은 평온 그 자체였다.
17시 되기 전에 해변에서 다시 바모 역으로 갔다.
17시 시드니 시내행 열차를 타고 20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타향 만 리 먼 외국에서 이렇게 하루를 보낸 것도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았다.
외국 여행에서 주택가 중간에 한번씩 보이는 공동묘지는 애써 시선에서 외면했는데,
오늘은 너무 독특한 감정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45년 살아온 인생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잘 처리하고 새로운 경험과 작고 소중한 행복을 얻은 것 같아 기뻤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옆에 있습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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