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the road rise up to meet you,

And may the wind be always at your back.

0100_일본IT취업및생활 34

일본 사회 이년차 생활 Part 2-4

2005년 2~3월에 1년 만기 될 취업비자의 연장을 신청하였다. 취업 유지 증명과 고용회사 관련 서류 등을 일본 출입국 관리소에 제출하고 1개월 정도 기다렸다. 연장 불허 사유가 없으면 취업비자 연장되었다. 관건은 취업비자 연장 기간이 1년이냐? 3년이냐? 는 부분이었다. 1년이면 내년에 다시 또 이 과정을 거쳐야 하고, 3000엔 정도의 인지 비용이 다시 든다. 3년이면 3년 동안은 출입국 관리소에 올 필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3년이 나왔다. 이게 나의 4년 일본생활에 기준이 되었던 것 같다. 만약 1년이 나왔으면, 2년 또는 3년의 일본 생활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3년 취업비자에 재출입국허가증을 추가로 발급받아, 3년간은 일본인과 같이 외국으로 출국했다 입국할 때, 복잡한 입국절차 없이, 재..

일본 사회 이년차 생활 Part 2-3

2005년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갖는 연도였다. 본격적인 일본 사회생활 시기이자, 풀타임 직장인이 된 시기였다. 이직과 귀국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시기였다. 이를 위해 스스로의 역량 강화에 집중하였다. 2003년은 일본 취업 연수에 올인했다. 2004년은 일본 취업과 일본 정착 시기였다. 2005년은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로 다짐하였다. 스스로 점프 업하자고 마음먹었다. 스스로 역량 강화를 위해, 세 가지를 지키기로 했다. 첫번째 건강이었다. 외국에서 홀로 단신으로 지내야 하니 무조건 건강해야 했다. 두 번째 돈이었다. 이렇게 혼자 외국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했다. 셋째 경력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결국 직장에서 시간이 경력이 되지 않으면 후일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일본 사회 이년차 생활 Part 2-2

사실, 당시에는 일본 회사로 매일 출근하는 게 끔찍했다. 일본 회사의 사람들도 보기 싫었다. 잘 모르는 일본어로, 잘 모르는 각종 회사 업무 상황에 부딪치는 게 싫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는게 심적으로 버거웠다. 일본 회사에서 업무는 지금 한국에서 하는 IT업무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출근해서 담당하고 있는 시스템 인프라 모니터링하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서비스에 지장이 발생하면 대응한다. 매주 2~3번의 회의에 들어간다. 업무 성과를 정리하여 보고한다. 다른 일본인 직원의 시스템 관련 요청사항에 대해서 대응한다. 팀 매니저가 조용히 불러서 부드럽게 지적한다. 아주 어려워하며 지적한 사항 고치겠다고 말한다... 말로는 크게 어려운게 없는 일지만, 일의 디테일은..

일본 사회 이년차 생활 Part 2-1

2005년 1월 3일 일요일, 일본 취업 후 첫 휴가로 한국 본가에 10일 넘게 갔다 왔다. 이날 휴가 복귀는 오후 늦게 일본 도쿄발 비행기를 타서, 오후 7시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와, 나리타 공항 전철를 타고, 환승해서, 일본집 전철역에 내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일본 자취집에 도착하니, 밤 9시 정도였다. 한국 본가에 도착 연락을 하였다. 캐리어에서 어머니 반찬과 한국에서 사온 물품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니, 밤 11시였다. 첫 휴가때 깨달았다. 귀국 후 다음 날 출근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사실을, 차라리 휴가 마지막날 하루 전에 귀국하여 일본 집에서 하루라도 보내야 다음날 출근하는게 심리적으로 좀 더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군대에서 이등병이 첫 휴가 복귀하는 기분이었다. 한국 본가에..

일본 사회초년생 생활 Part 1-5

10월과 11월은 그냥 일본 회사-집 두 군데만 다녔다. 주말에 한번씩 바람 쐬러 취업비자 회사 교육장을 가고 했다. 하지만 4~6월 함께 대기했던 기숙사, 교육장 동기들도 다 독립해서 떠났고, 그다음 들어온 기수들이 차지한 공간은 낯설고, 내 자리도 없어져서 후배 기수와 조금 이야기하다가 나오곤 했다. 교육장 대기할 때처럼, 자취집 근처의 안가본 곳으로 자전거 타고 산책을 갔다. 영역 넓히기였다. 가다가 잘 조경된 공원 있으면 좀 앉아서 사람 구경하다 오곤 했다. 이때쯤은 2003년 고향에서 같이 연수받은 동기들도 4~7월 사이 입국, 일본 회사로 출근하여 자리를 많이 잡았다. 주말에 한번 씩 신주쿠 등에서 만나서 커피 한잔하며 수다 떨거나, 각자의 자취집에서 술 한잔하고 했다. 당시 연수 완료한 12..

일본 사회초년생 생활 Part 1-4

두 번째 급여를 9월 25일에 받고 은행 잔고가 42만 엔이 되었을 때 큰 성취감이 생겼다. 이제는 회사 다니면서 버는 돈을 저금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8월에 시스템 교체 업무 때문에 야근과 주말출근이 좀 있었다. 제법 초과 근무를 많이 한 덕분에 5만엔 정도가 더 들어왔다. 왠지 돈을 더 버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취업비자 회사측에서 이제 다음 기수 입국 때문에 기숙사를 빨리 비워달라고 했다. 늦어도 11월전에는 자취를 구해서 나가 달라고 하였다. 난감했다. 일본에서 집 구하기는 유학생 카페에서 악명이 높았다. 처음에는 유학생이나 다른 한국인 직장인이 구한 집에 하우스셰어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신경쓸 일도 많고 생전 모르는 남과 사는 게 어떨지 몰라서 그만두었다. 당시..

일본 사회초년생 생활 Part 1-3

7월부터 일본회사로 출근하게 되니 여러 가지 추가 비용이 들었다. 일본회사는 세이부 이케부쿠로선 30분 거리의 역이라서 출퇴근용 전철 정기권으로 1만 2천엔 정도 들었다. 이것은 회사에서 교통비로 후불 보전해주는 비용이다. 당장 출근을 위해서는 먼저 선불로 내돈으로 구매해야 했다. 그리고 출근 복장도 좀 더 구매하여야 했다. 출근 결정 당시에는 면접용 정장과 생활용 셔츠, 바지 2~3벌 뿐이었다. 정장 출근은 아니었지만, 완전 캐주얼 허용도 아니어서, 노타이, 셔츠, 면바지, 구두 또는 컴포트 슈즈 계열 정도의 비즈니스 캐주얼을 요구하였다. 주 5일 출근을 위해 좀 더 비즈니스 캐주얼 의류를 구매하였다. 여기에 2~3만엔 정도 들었다. 일본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복장도 후줄근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일본 사회초년생 생활 Part 1-2

우리 회사에서는 1년 차 급여는 월 24만 엔이었다. 다만 몇가지 추가 옵션이 이었다. 플러스 옵션은 재직 중 일본어 능력시험 1급 취득 시, 1년 차는 월 3만 엔, 2년 차는 2만 엔, 3년 차는 1만 엔 추가 지급이었다. (회사 측에서는 일본 회사 생활 3년 이상에서 일본어 능력 1급은 당연한 것으로 상여로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이너스 옵션도 있었다. 대기가 아니라 진짜 취업해서 급여를 수령하는 상태에서는 회사 기숙사비를 매월 3만엔 공제하고 급여를 지급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급여 수령 상태에서는 3개월 이내에 기숙사를 퇴거해야 하였다. 이것은 취업한 상태에서 회사 기숙사를 점유하지 말고, 독립해서 다른 대기자나 신규 입국자에게 자리를 제공하는 목적에 따라서 그렇다고 하였다. 취업을..

일본 사회 초년생 생활 Part 1-1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구글에서 일본 IT 연수, 일본 IT취업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다. 현재까지 활발하게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한창인 2020년에도 일본으로 IT 취업으로 넘어가는 분도 있고, 2018년에 10년간 일본 취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분의 글도 읽어보았다. 나는 2004년 4월에 일본에 취업으로 입국해서 2008년 3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약 4년을 일본 생활을 한 셈이다. 인생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경험이었다. 특히 사회 생활의 시작을 일본에서 생활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일본에서 생활은 입국 후 2005년 3월까지 1년, 그 후 2005~2006년, 2006~2007년, 2007~2008년 귀국까지 각 1년씩 정리하려고 한다..

일본 IT회사 현장 면접 총평

첫 번째, 긴자 면접은 첫 실전 면접 몸풀기로 괜찮았던 것 같다. 대기자 동기들에게 이 면접 이야기를 하니, 무슨 면접을 회사 내 회의실도 아니고, 회사 앞 카페에서 하냐고 하였다. 이건 회사를 보여 줄 여건이 안되는 거나, 회의실도 없는 환경이라고 하였다. 그런 것 같다고 수긍하였다. 면접 때 필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PM은 분명 나중에 자기 맘에 안드는 걸로 갈구거나 태클걸꺼라고 하였다. 이것도 맞는 말 같았다. 이 현장으로 결정된 경력 많은 분도 맨날 야근이라고 욕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해줬지만, 일정 지체된 프로젝트에 추가 개발자 뽑아서, 갈아 넣는 곳인 것 같았다. 두 번째, 면접 현장은 고객사가 아니라 일본계 인력 파견 회사였다. 그 시기에 소속 한국계 회사는 대기자들이 많은 상태였다. 그..

일본 IT 회사 현장 면접 Part 3

세 번째 면접은 이케부쿠로 역 근처 작은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교육장 대기자는 나 혼자, 그리고 외부에서 한국인 두 명이 합류하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나보다 1~2살 위에 분들이었고, 일본에서 IT업무 하다가 이번에 우리 회사를 통해서 이직하려고 한다 고 하였다. 우리 회사를 통해서 이직하려고 하니, 급하게 이직을 생각하시는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실무에서 3~4년 경력자들이어서 그런지 IT기술은 잘 아는 것 같았다. 사무실 면접에서 서류와 간단한 사항을 확인하고 이동해서 일본 고객사 현장 면접을 본다고 했다. 그 길로 세이부 이케부쿠로선 전철을 타고 한 20~30분 이동하여 어느 역에 내렸다. 가는 길 전철에서 면접자 3명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사무실 담당자와 우리 영업부장은 ..

일본 IT회사 현장 면접 Part 2

두 번째 면접은 이케부쿠로의 어느 빌딩 2층 사무실이었다. 약간 본격적인 회사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면접시간이 9시 30분였던 것 같다. 그래서 9시에 이케부쿠로역 몇 번 출구에서 영업부장과 만나 가기로 하였다. 잘 기억이 안나지만, 같이 대기했던 인원 1명과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국인 1명이 같이 면접에 함께 했다. 9시 10분쯤 해당 회사 사무실에 도착하여 오픈된 회의용 테이블에서 기다렸다. 이미 이 회사에 채용된 건지 교육장에 한 번씩 얼굴 비치는 취업 선배가 두 명 정도 있었다. 그들도 출근하는 길이라서 가볍게 인사만 하고 갔다. 9시 30분쯤 사내 회의처럼 그 자리에서 면접을 봤다. 그 회사 인사담당자쯤 되는 사람이 와서 우리의 이력서를 보고, 각종 질문을 했다. 우리는 자기 소개를 하고 질문..

일본 IT 회사 현장 면접 Part 1

일본에서 첫 면접은 6월 초, 오후 4시쯤 이루어졌다. 장소는 일본 도쿄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긴자(銀座)였다. 하지만 면접을 본 곳은 일본 업체 사무실이 아닌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 2층에서 이었다. 그 자리에 인원은 좀 많았다. 우선 우리 쪽에서는 회사에 1명 있는 일본인 영업담당과 면접자 3명이 나갔다. 영업담당은 치카츠 부장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50~55세 정도 되는 덩치 좋은 분이었다. 크게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았고, 면접 시 동행하는 역할을 했다. 면접 팁이나 각오, 일본인에 맘에 드는 답변 같은 걸 알려주었다. 맘에 안드는 답변을 하면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지적도 했던 것 같다. 면접자 3명은 취업 대기자 중 제일 경력과 불만이 많은 2살 위의 분과 영어권 체류 경험..

일본IT업체 컨택 Part 3

일본에 왔다고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출근은 다음날부터 하였다. 다만 급여가 나오는 일이 아니고, 회사 교육장에서 일본어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일본인 선생님이 9시부터 12시까지, 1시부터 4시까지 6시간 일본어 수업을 하였다. 수업은 오전은 일본어 능력시험 1급 또는 2급 준비, 오후에는 일본어 프리토킹 위주였다. 수업 분위기는 썩 좋지는 않았다. 회사 교육장에 있는 사람들은 일본어학원생이 아니라 IT취업을 목표로 온 사람들인데, 일본어 수업이 끊임 없이 반복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일본인 선생님들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정주부, 대학생 같은 아르바이트 개념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나도 첫 1~2주일은 일본 분위기도 익히고,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며, 큰 부담 없이 일본에..

일본 IT업체 컨택 Part 2

4월 둘째 주 월요일, 나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짐은 그동안 책가방이었던 백팩 1개와 캐리어 1개였다. 면접용 정장과 구두, 셔츠 2벌과 일상 생활용 속옷과 양말, 티셔츠를 챙겼다. 어머니께서 장조림, 장아치 등 밑반찬을 제법 챙겨주셨다. 무거워서 갖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갈 수 없었다. 당시에는 노트북을 갖고 가지 않았다. 2004년은 쓸 만한 노트북이 한창 보급되던 때라서 15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연수가 끝나갈 무렵, 동기들이 새 노트북을 장만해서 갖고 오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지만, 부모님께 노트북을 사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직원 회의 겸 교육실에 인터넷 되는 PC가 충분히 있으니, 굳이 노트북은 없어도 된다는 정보를 받았다. 나머지 잡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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